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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골프채 한 자루가 아파트 한 채, 소더비로 가보자!
  • 월간골프
  • 등록 2020-08-06 14: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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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앤틱을 대할 때 가장 일반적인 궁금증은 ‘얼마나 할까?’라는 가격에 대한 생각이다. 

   

현존하는 수 백 년 전의 나무로 된 골프클럽은 얼마나 할까? 

   

골프채 가격을 보러 소더비경매장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2007년 9월, 소더비 골프채 경매사상 최대에 달하는 6백52자루의 나무골프채가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졌다. 총 경매가는 자그마치 4백만 달러, 한화로 50여억 원에 달했다. 소더비 측이 챙긴 커미션만 해도 25퍼센트에 달하는 10여억 원이 넘었다. 

   

그 많은 골프채를 내놓은 주인공은 단 한명, 제프리 엘리스라는 골프용품 수집가였다. 워싱턴주의 골프역사학자였던 그는 30년 동안 수집하던 그 많은 희귀 소장품을 하루아침에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내가 병에 걸린데다 집을 떠나 있을 때는 혹시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도둑이라도 들지 않을까하며 늘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흥미진진한 가운데 진행된 경매에서 앤드루 딕슨이라는 스코틀랜드의 장인이 만든 18세기 롱 노우즈 퍼터가 세계 최고가를 경신했다. 낙찰가는 18만1천 달러(한화 약 2억 원)로 익명의 한 수집가에게 팔렸다. 

   

이전까지의 최고가는 1999년 스코틀랜드 글래스 고우에서 거행됐던 크리스티 경매에서의 17만4천9백 달러(한화 1억9천원)로, 1780년에 제작된 역시 퍼터였다. 두 번째로 비싸게 팔린 채는 아이언이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15만9천 달러(한화 약 1억8천만 원)에 낙찰됐다. 제작자는 미상이었으며, 헤드 앞부분이 도끼 자루 같이 생긴 ‘스퀘어 토우 아이언’의 형태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아이언 중 하나였다. 퍼터와 아이언 두 자루가 서울 주변의 신도시 아파트값과 맞먹는 셈이었다. 

   

경매는 한숨을 돌리며 19세기 골프채로 넘어온다. 1820년에 제작된 톰 모리스 시니어의 드라이버 차례다. 18세기와 다른 점은 일단 샤프트가 17세기까지 사용됐던 물푸레나무가 아닌 호두나무의 히코리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가격은 뚝 떨어져 1만 달러(한화 약 1천1백만 원)에 낙찰된다. 헤드 윗면에 T. MORRIS라고 찍혀 있고 샤프트의 길이는 44인치였다. 당시의 드라이버는 샤프트 길이가 47인치까지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은 캘트 족의 후손으로 건장하고 큰 키를 가졌기 때문에 21세기 드라이버만큼이나 긴 나무샤프트를 사용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드코스의 헤드프로이자 클럽 제조 장인이었던 톰 모리스가 만든 드라이버는 특별했다. 훅과 슬라이스를 방지하기 위해 헤드 앞면을 안으로 파인 곡선으로 다듬었으며 헤드 앞부분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양의 뿔을 깎아 밑바닥에 인서트형식으로 끼워 넣었다. 

   

헤드 무게를 조정하기 위해 헤드 밑면에 세 개의 나사를 박아 넣은 것 등은 백 년 뒤를 내다본 발상이었다. 고운 양가죽으로 감은 그립은 누구에게나 평생 보물로 모셔두고 싶은 충동을 갖게 했다.

   


여러 가지 아이언 클럽들 중 페이스 면이 매끈하고 오목하게 파인 것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컨케이브라 불리는 해저드나 샌드에서의 탈출용 레스큐 클럽이었다. 필드와 길거리의 구분이 없던 당시 상황에서 교통수단이었던 마차의 바퀴자국으로 파인 축축한 땅에 처박힌 볼을 쳐내기 위한 현대적 의미의 하이브리드 클럽이었다.

   

20세기 초로 넘어가면서 클럽은 기묘한 모양을 하면서 더욱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1천3백만 원에 낙찰된 자이언트 니블릭은 헤드의 지름만 15센티미터에 달해, 팬케익이나 피자를 뒤집는 프라이팬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대형헤드를 지녔다. 

   

그 밖에 샤프트가 안 달렸으면 말발굽이라고 우겼을 모양의 천만 원대 말발굽 퍼터도 있었고, 페이스면이 둥그런 작은 절구 모양의 퍼터도 나왔다. 아래가 톱니 모양을 한 삼지창 같은 모양의 벙커 탈출용도 수십자루에 달했으며, 한 자루의 아이언으로 모든 아이언클럽을 대신할 수 있도록 헤드 뒷면에 나사를 만들어 각도를 조절하게 한 아이언도 있었다. 수 백 자루의 나무골프채는 며칠간 그렇게 소더비에서 새 주인에게 팔려나가면서 골프채 경매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이날 소더비에서 진행된 골프채 경매품 가운데 특이한 아이언 하나가 있었다. 헤드 한가운데가 둥그렇게 골프공 크기의 구멍이 뚤린 클럽이었다. ‘로이의 프레지던트 아이언’으로 불린 이 클럽은 1880년 제임스 앤더슨이라는 장인이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로얄 머슬버러 골프클럽의 열성적인 멤버였던 로이는 1879년 앤더슨에게 물속에서도 쳐 낼 수 있고, 샌드용으로도 쓸 수 있는 클럽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세인트 앤드루스시 인근 앤스트루더골프장의 장인인 제임스 앤더슨은 물과 샌드 겸용 클럽을 만드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 기발한 착상을 했다. 헤드 한 가운데 구멍을 뚫으면 물과 모래의 저항을 받지 않고 볼만 쳐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회심의 클럽을 완성시켰다. 

   

그는 이 클럽이야 말로 최고의 발명품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 5년 전 영국왕실협회도 ‘냇가에 들어간 볼은 한 벌타가 된다’라는 새로운 룰을 발표한 시기였다. 벌타를 피하기 위해 골퍼들은 물속에서도 볼을 쳐내야 했던 관계로 이 구멍 뚫린 클럽은 곧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구멍 뚫린 채가 발명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골퍼들은 앞다투어 주문을 했다. 앤더슨은 이 주문만 소화해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단조클럽으로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며 제작에 몰두할 무렵, 필드에서 갑자기 나쁜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물이 고인 깊은 항아리벙커에서 이 클럽을 사용했던 골퍼들은 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고 불평했다. 구멍을 통해 저항 없이 물이 통과하는 것은 좋은데, 볼이 닿는 헤드면이 너무 적어 정확한 가격이 힘들었던 것이다.

   

시타용으로 단 6자루만 시중에 나온 상태에서 클럽 생산은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30대 중반에 모처럼 최고의 장인이 됨과 동시에 벼락부자를 꿈꿨던 앤더슨은 그만 좌절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금 문제 등이 겹쳐 골머리를 앓던 그는 홧병으로 50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클럽은 후에 R & A 수장인 ‘저스티스 제너럴에게 증정되면서 ‘프레지던트’ 클럽이라 불렸다. 아이러니하게 앤더슨이 남긴 클럽은 단 여섯 자루였지만, 마치 잘못 제조된 주화나 화폐처럼 골동품의 관점에서는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희귀한 클럽이 돼버렸고, 오늘날 한 자루 당 2천만 원 대에 이르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글/이인세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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